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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경, 상경, 서울 정착... 만남, 이별 ... 외로움 2007/10/25 03:24

이모할머니와 작은 아버지께서 서울에 계셔서 어릴적 몇 번 서울에 와 본 추억이있다. 유람선도 타고, 동물원도 가고.. 철이 들기시작 했을 무렵부터는 무작정 '서울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머리 한 쪽 구석에 자리잡게 되었다. 아무래도 포항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도시라고는 해도, 가진 것 없는 내가 뭔가 새로이 활동하는데는 규모가 작은 도시였고(월마트는 촌동네부터 공략했다지만..), 무엇보다 답답했다. 종종 서울에 가면 뭔가 탁트인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서울행을 동경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단순히 촌놈의 서울 동경이라고 해도되려나.

서울에 올라온지는 꽤 오래됐다. 중간에 군복무를 하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혹은, 다시 포항으로 내려간다거나 하는 것 때문에 띄엄띄엄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고3 무렵부터 해서 서울에서 거주했다고 치면 나의 서울생활도 이젠 꽤 자리를 잡아간다고 볼 수 있다.

쭉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룸메이트를 하면서 살아왔다. 고등학교때는 창업동지들과 함께 동거동락했고, 그 이후에는 새로 시작하는 벤처회사의 오피스텔에서 동거동락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먹고 자고하면서 좋은 경험과 추억을 많이 얻었다. 어쩔때는 잠잘 곳은 없고, 고향으로 돌아가기엔 자존심이 날 허락하지 않아서 다소 긴 기간동안 노숙을 한 적도 있다. 찜질방에서 때로는 전철역에서.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군입대를 했고, 군제대후에는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전역하자마자 개인사업을 하다가, 프로젝트 몇 개 마무리하는 것으로 단기간에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웹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지인과 함게 또 다시 동거동락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까지 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곳으로 오게되었다. 블로그칵테일에서 일하게 되었고, 집은 상도동에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혼자 살아가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을 동경했고, 누구보다 외로울 나였지만,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외로움을 잊고 살았나보다. 한 동안 외로움이라던가, 고독이라던가 이런것들이 한 없이 밀려왔다.

상도동에 정착하면서 점점 이 동네 사람이 되어갔다. 동네 어르신들과도 얼굴트고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단연 제일 친해진 사람은 태용이형이다. 내가 세들어 사는 곳의 주인집형이다. 서른중반을 달리고 있는 형님인데도 항상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나를 대해준다. 그리고 참 때묻지 않고 해맑은 사람이다. 그 형님이 있어서 덜 심심했는데, 지난주에 결혼을 했다. 형님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 누구랑 노나'라는 생각이 막 밀려온다.

그리고 정릉동에 있는 우택이형을 꼬셔서 상도동으로 데리고 왔다. 현재는 같은 건물에 산다. 자존심이 쎈 형이다. 배우지망생인데, 잘 다니던 명문대를 3학년에서 중도하차. 현재는 연영과에 가기위해서 수능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이미 발도 넓은 사람이, 기필코 실력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말하는.. 자존심이 대단한 형님이다. 이 형님도 언제나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기둥이였는데, 수능이 끝나면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겠단다. 난 이제 외로워서 어떻게 사나.

글이 길어 졌는데, 이 두 형님이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라서 밀려오는 외로움을 주체 못하고 포스팅을 해버렸다.

하여튼 사람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처음 상경할 때, 티셔츠 두 벌과, 빤스 두 장 들어 있는 가방하나 메고, 차비 3만원 들고 올라왔다. '돈 못 벌면 서울에서 굶어죽자'는 심뽀였다. 방황도 많이했고, 추억도 많이 있고, 삽질도 많이 했구나.. 그 동안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에 입성해서 이제는 아는 사람도 꽤 되고 말야.. 참 사람의 적응력은 대단한 것 같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어야겠다.. 더 열심히 살어 종식아! 낙향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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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Su
    2007/10/25 10:24
    잘살아 보세~
    우택이(?)한테 수능 잘보라고 전해주세요
    ㅋㅋㅋ
  2. 김태용
    2007/11/15 13:23
    이쉐키 서른 중반이라니 아직 서른 초반이라고!!
    안되겠네? 좀 맞아야겠따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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